기독교 안에서 쓰는 이상한 말들 : 황숙이
기독교 계에서 생각 없이 쓰는 말들을 분석해 보자.

황숙이
요즘 유투브를 보다 보면 수많은 개신교 설교자들이 내뿜는 말들 중에 "거룩"이란 말이 있다. 좋은 의미로 한 설교이지만 그 단어가 문법적 오류를 안고 있다 생각하니 듣기가 거북한데 좀 유명한 설교자가 그 단어를 쓰면 너도나도 그 단어를 생각 없이 쓰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때문에 우리의 거룩을 바라신다." 이런 식이다. 심지어 이게 뭐 가 잘못이냐고 되물을 것이다. 영어는 잘할지 몰라도 국어는 그냥 읽기 수준에 만족한다. 그러나 바벨론 가운데서도 선악을 분별하는 훈련이 된 우리라면 이것도 한번 분석해 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말은 어원이 있고 "거룩"이라는 말은 "거룩하다"라는 형용사의 어간의 일부에 해당된다. 어간이란 "거룩하고, 거룩하니, 거룩해서.." 등에서 변하지 않는 부분 즉 "거룩하"까지를 말한다. 즉 "거룩"이라는 알파벳 몇 개가 있다고 해서 단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다", "-니", "-고", "-지" 등의 어미가 붙어야 비로소 말이 되는 것이다. "깨끗하다", "소소하다", "무엄하다", "심심하다", "평탄하다" 등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형용사나 혹은 동사를 명사로 만들어 쓰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형용사나 동사의 어간에 "ㅁ"을 붙이는 것이다. 즉 거룩하다 > 거룩함, 심심하다 > 심심함, 예쁘다 > 예쁨, 편가르다 > 편가름, 살다 > 삶 등등.
또 다른 방법은 불완전 명사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의 거룩을 좋아하신다"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거룩함을 좋아하신다" 해야 하지만 "우리의 거룩한 것을 좋아하신다"라고 풀어 쓸 수도 있다. 즉 "심심함" 대신에 "심심한 것", "노련함" 대신에 "노련한 것"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심심을 달랜다"는 말과 "심심함을 달랜다"는 말, "노련이 돋보인다"와 "노련함이 돋보인다"를 비교해 보면 말을 억지로 생략하는 것은 더 많은 혼란을 초래할 뿐임을 알 수 있다.
교회 와서 억지로 동화된 말 중에는 "증거하다"가 있다. 일반적으로 "증거"는 명사로 쓰일 뿐 "-하다"를 붙여 동사로 활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성경에 그렇게 박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그냥 세뇌가 되어 갔다. 물론 설교자들도 감히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 토를 달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게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마저도 죄의식을 갖게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증거하다"가 "증언하다"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수리학 혹은 논리학에서는 "증명하다"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법률적 용어로는 "증언하다"가 많이 사용되는데 종교계에서 쓰는 "증거하다"는 그 문법적 근거가 빈약하다. "증거가 뭐냐?" "증거는 있어?" 등 그냥 명사로 쓰이는 것이 "증거"이고 이것을 꼭 동사에 활용하고 싶으면 "증거하다"라는 애매한 말 대신에 "증거를 제시하다" 혹은 "증거를 들어 말하다" 등으로 동사를 바꾸어 써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교회에서만 쓰는 용어들이 있겠지만 두드러진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보았다. "말할 때도 생각해 보고 말하자"라는 초등 4학년 어린이의 대화 예절 표어가 귀여워서 가져와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