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함께 하는 미국 생활 : 문혜원
단조로운 의사 생활에 서의 활력소 (회고)

문혜원
국민학교 음악 교사이셨던 어머니와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아버지, 그리고 기독교 문화 속에서 태어난 우리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무척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기독교 학교를 어릴 때부터 다녔던 나는 초등학교 때는 노래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였고, 내가 음악대회를 나간다면 없는 살림에서도 꼭 이쁜 옷을 사 입혀서 보내셨던 우리 어머니 생각이 가끔 나곤 한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성가대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 음악이 나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이곳 미국에 사는 큰오빠, 남자동생은 심장외과, 정신과 의사로 일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까운 미국교회에 나가 메시아 공연도 같이 하고 조그마한 도시에 살 때에는 지휘자로 교회를 섬긴 적도 있다.
2003년도 여름에 우연히 신문을 보던 중에 월트 디즈니 홀 개관 기념 음악회에 주빈 메타가 오는데, LA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합창단원을 오디션한다는 기사를 보고 운이 좋게 그곳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9번 교향곡은 베토벤이 가장 추앙했던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히리 쉴러의 시를 가사로 만들어 성악 부분을 첨가시킨 교향곡이다. 네 사람의 독창과 대합창이 교향곡에 사용된 최초의 음악이다. 이 곡을 작곡한 베토 벤은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음향의 세계와 단절된 상태에서 무한한 고통과 싸워야 했고, 육체적인 건강의 악화와 가난 때문에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이 때 베토벤은 교향곡 중 가장 위대한 고향곡 9번과 함께 가장 위대 한 미사 음악 Misa Solemnis (장엄미사)를 작곡하게 되었다.
이 두 곡 안에 그의 모든 음악 세계, 인생관, 신앙관, 삶 등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데, 생의 말년에 장엄 미사를 통해 자신의 내적 평안과 함께 외적 평화를 기원하며 곡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 자신은 아뉴스데이에서 내적인 평화를 확신했지만 외적 평화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교향곡을 통해 '고뇌를 통한 환희'를 맛보게 되었고, 외적 치유와 평화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1834년 10월, 이 곡이 초연되었는데, 이 때 연주가 끝난 뒤 베토벤은 귓병으로 인해 박수갈채를 듣지 못하다가 독창자들이 그를 청중 쪽으로 돌려세워 주자 비로소 연주가 성공적인 것을 알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45년 종전 이후 세기의 명 지휘자 프루트 벵글러가 세상을 떠나기 전 폭격으로 폐허가 된 베를린에서의 이 곡을 연주했는데 이 연주는 지금까지 가장 큰 감동의 연주회였다고 한다. 1989년 번스타인의 지휘로 동서독의 연합(통일)되면서 무너진 베틀린 장벽에서의 연주곡이 바로 이 베토벤 9번 교향곡이었다.
지휘자 주빈 메타는 인도에서 태어나 의예과 대학 공부를 하던 중에 지휘자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세계의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역임했으며, 특별히 이 음악회에 객원 지휘자로 같이 공연하게 되었다. LA의 UCLA 합창단, 채프만 대학교 합창단, 내가 속한 Hansori Chorale 등의 합창단으로 구성된 120여 명과 LA Phil 오케스트라 단원 100여 명이 함께 공연하게 되었다. 일단은 이 음악이 독일어로 되었기에, 독일어 그대로 다 외워야 하고, 한 5개월에 걸쳐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연습을 하고 낮에는 환자 보는 중에 계속 그 CD를 들었기에 외울 만도 했던 것 같다. 환자들한테 저 노래는 월트 디즈니 홀에서 공연할 곡이라고 말하니 그들도 신기해 하며 재미있어 했던 것 같다.
각 합창단이 충분히 연습이 된 다음에 채프만 대학교의 Dr. Hall이라는 지휘자가 5일 동안 리허설을 하며, 각 합창단의 소리의 색을 맞추는 작업을 하였다. 그 후 만반의 준비가 되었을 때, 주빈 메타와 3일간 dress 리허설을 하는데, 특히 그가 독일식의 확실한 발음 (특히 끝날 때 T 발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공연 장소인 디즈니 콘서트 홀 각층마다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세밀하게 신경을 썼다. 리허설 첫날 경호관이 그를 모시고 연주장에 들어서는데, '미스터'라고 부르지 않고, '마에스트로' 라고 호칭을 붙였으며, 메타 역시 자기가 먼 곳에서 왔기 때문에 피곤하고 기분이 안 좋으니 잘 따라서 하라고 엄포 겸 협조를 구하고 시작하였다. 이 곡을 1월 첫주 목, 금, 토, 일, 4일 동안 계속 공연하였는데, 이 연주의 티켓은 6개월 전부터 이미 매진된 상태여서 우리 가족들도 이 표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많은 악기, 4파트의 합창, 솔로이스트 4명을 빈틈없이 이끄는 그 완벽함과 예술성, 카리스마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공연 내내 악보 한 장 없이 지휘를 하였고,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에서 신이 들린 사람처럼 보였다.
토요일 저녁 공연 때는 검은 턱시도 대신 캐주얼한 양복을 입고 지휘를 해서 나는 속으로 친구랑 저녁을 먹고 늦게 도착해서 옷을 같아입을 시간이 없어서 온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 토요일 저녁 공연은 그런 옷을 입고 한다고 해서 속으로 웃은 적도 있다. 4번의 공연을 마친 후에 모든 단원들은 메타와 1주일간 각 인생의 있어서 역사적인 시간을 보냈는데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사는가 하며 서로 아쉬워하며 작별을 했다. 4년이 지난 몇 개월 전, 주빈 메타가 다시 LA를 빈 필하모닉과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과 함께 찾는다는 소식에 그의 음악을 다시 감상하고 싶어 표를 어렵게 구해 디즈니홀을 다시 찾았다. 음악의 종류의 따라서 어떤 때는 정말 아이같이 귀엽게, 또 어떤 때는 엄하게, 다양하게 모든 종류의 음악을 이끌어가는 감수성이 너무나 좋았고, 쇼팽의 이별곡을 잔잔한 물결같이, 그리고 격렬한 풍랑같이 표현하는 랑랑의 연주에 눈물을 흘리는 관중도 보았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우리의 면역을 증가시키며, 스트레스 많은 치과의사에게 필요한 윤활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금도 그때의 프로그램과 사진, 행복했던 추억을 가보(?)로 잘 간직하고있다.
<필자 소개 : 이 글은 문혜원 장로님이 2004년 월트 디즈니 홀 개관 기념 연주회 중의 하나인 세계적 지휘자 주빈 메타와 LA필하모닉 그리고 4개 합창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교향곡의 연주에 알토 파트로 공연한 후기를 경북대학교 치과대학 동창회보 2009년 40호에 올린 글입니다. 영원히 기억될 이름으로 하라고 해서 "Hyewon Kim Moon"으로 참가하셨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