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미로
- 종려

- 9월 21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26일

흔히 미로를 헤맨다 하면 밤에 수림이 울창한 정글 속을 헤매는 광경을 떠올릴 것 같다. 길이 없어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상태로 오직 가느다란 불빛이 유일한 희망인 그런 상태가 연상된다. 그런데 나는 집 주위에서 자동차를 타고 오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몇 번 있다. 도심은 아니더라도 인가가 늘어선 곳이라 어둡다고 할 수는 없는데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샛길로 들어선 이후로 가도 가도 아는 길이 나오지 않아서 절망 상태에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낮에 가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 낯설고 이상한 동네는 집에서 먼 곳이 아니었다. 그러한 나는 요즘 방 안에서도 미로를 헤매고 있다. 실체가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미로이다.
세상의 천재들은 기발한 발명들을 해서 우리에게 편리하고 흥미진진한 삶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공부 부담을 안기고 머리 싸움을 하게 한다. 머리에 쥐가 난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어떤 주제에 매달리고 보면 일상 생활도 엉망이고 삶이 피폐해진다. 누가 하라고 떠미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미로 속에 들어갔다. 솔직히 재미가 있었기 떄문이다. 이제까지는 잘 굴러갔다. 그런데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니 그걸 해결하려다가 일이 점점 더 꼬이게 되고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1초만에 해결책을 내놓는 척척 박사 쳇GPT에게도 여러 번 도움을 청했지만 문제는 아직 사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해놓은 일이 아까워서 최대한 쉬운 방법을 찾으니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이럴 경우 그냥 눈 딱 감고 처음으로 돌아가면 된다. 컴퓨터가 문제가 생기면 흔히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면 많은 경우 문제가 해결된다. 초기화시키면 그 동안의 작업이 날아갈 수는 있지만 기계를 붙들고 싸울 수는 없다. 기계는 융통성이 없어서 점 하나만 달라도 아니라고 하고 인간은 그 차이를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안 풀리는 문제를 오기로 붙들고 있으면 내 손발이 묶인 것과 같아서 그런 상태로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가도 문제 해결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이 미로를 벗어나는 길은 딱 두 손을 놓아 버리고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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