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 종려

- 3월 5일
- 3분 분량

실종되었던 남편은 1주일만에 집에 들어왔고 아내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종이와 펜을 가져와 가정의 총 재산 내역을 적으라고 다그쳤다. 일주일간의 실종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볼 새도 없었다. 혹 도박을 했는지 무슨 큰 사고를 쳐서 합의금이 필요한지 궁금했지만 일단 집을 포함한 재산 내역을 대충 적었다. 그걸 본 남편은 확실한 거냐고 묻고는 며칠 내로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현금화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내는 적어도 집만은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 집은 두 자녀와 함께 미래를 열어갈 보금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집을 내놓은 것처럼 위장을 했는데 며칠 후 남편이 또 사라졌다. 그래서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얼마 후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남편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었다는 것, 그리고 남편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이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남편에겐 내연녀가 있었다. 내연녀는 사귀는 남자가 상처한 독신남이 아니라 엄연한 가정이 있는 유부남인 것을 알게 되고는 결별을 선언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편이 내연녀에게 집착하여 끈질기게 찾아갔다. 내연녀는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였고 그렇게 둘이 싸우다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내연녀는 사망하게 되었다. 그러자 남편은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에 들렀고 마침내 경찰에 체포되었던 것이다. 모든 혐의가 인정되어 무기 징역 판정을 받은 그는 아내에게 당장 집을 팔아 그에게 영치금을 넣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와 이혼하고 집을 팔아 아이들과 함께 잠적했다. 이름도 개명을 하고 숨어 버렸다. 이 이야기는 유투브 사연들려주기 프로그램에 올라온 한 시청자 사연이다.
흔히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는 살인 사건과 같은 강력 범죄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괴물 같은 인간에게 이 단어가 붙여진다. 이 증상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형태로 나타나며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결핍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여성의 경우는 감정적으로 사람을 조종하거나 파괴하려는 경향이 남성보다 강하다고 한다. “양심의 가책 결여와 과도한 시기심은 여성 사이코패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들이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이익을 사회적 규범보다 우선 순위에 둔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사실을 왜곡할 준비가 되어 있다. 타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타인의 물건에 손상을 주는 행동을 하다가 붙잡히더라도 절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잘못이 없고 이 모든 것은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한 이야기를 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피해자를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미디어 때문에 사이코패스와 범죄자를 동격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사이코패스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대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며 정신병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그 1%에서 범죄자가 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죽을 때까지 그러한 성향을 모르고 살아간다. 위 사례의 그 가장이 만약 그리스도인이었다면 애초에 내연녀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죽을 때까지 사이코패스라는 판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이코패스의 비율은 비슷했겠지만 오늘날 유난히 많아 보이는 것은 미디어의 영향도 있고 무엇보다도 십계명과 같은 강력한 도덕률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나의 가족이 혹은 우리 공동체 내의 누군가가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가 테스트로 점수를 매겨 일정 점수 이상 도달하면 사이코패스 판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일단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그가 사이코패스라 해도 처벌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이러한 성정을 살피고 어떤 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서 이러한 성향을 발견하면 그가 혼자만의 어떤 상상에 몰입되지 않도록 주의 깊게 살피고 평소에 사회 규범을 잘 지켜 나가도록 조언해 주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고 그의 파국을 미리 막는 길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잘못된 인성이 공동체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사회적 처벌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장치가 있다. 처음에는 개인적 권면, 그 다음은 한두 명의 증인 데리고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한다. 교회의 권면도 거부하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는 것이 교회 징계의 단계적 기본 원칙이다. 초기 기독교회 당시에도 음행을 비롯한 인간 사회에 만연한 그런 문제들이 있었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그런 악한 자를 내어쫓으라고 했다. 그러나 징계의 목적이 정죄가 아니고 회복임을 “온유한 심령으로 그런 자를 바로잡”으라고 갈라디아서 6장에서 밝힌다. 즉 눈에 보이는 범죄는 눈감아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가정에서 혹은 공동체에서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교제 단절, 출교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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