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가 주는 메시지
- 종려

- 2025년 12월 22일
- 2분 분량

솔직히 나는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시시콜콜 그 옛스런 이상한 이름과 지명을 들먹이는 게 내 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교회에 출석하면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복 스토리 등은 귀에 못이 박이게 듣게 되지만 그건 그 시절 그들의 이야기이고 나랑은 별 연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던 것이 최근에 여호수아서를 공부하면서 그 모든 충고와 권면이 바로 나를 향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전사로서의 여호수아의 표상과 실체를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모세는 칼을 버리고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데에는 지팡이로 충분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칼을 손에 쥐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 16년간의 전쟁에서는 칼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그 두 사건을 그냥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실제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표상으로 주어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정표가 주어졌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에서 나와 침례를 받고 교회 생활을 하는 궁극적 목적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세의 인도를 받은 이스라엘은 반역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여호수아가 그 사명을 이어받는다. 그런데 여호수아에게는 모세와 똑같은 역할이 주어진다. 이번에는 홍해 대신에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에 앞서 요단강을 건넌 것은 예수님이 공생애에 들어가시기 전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것과 대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표상과 의미들을 지금 다 나열하기에는 지면이 좁을 것이다. 단지 지금 내가 받은 큰 은혜는 하나님이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40년 전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으나 10명의 개인적 의견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 지점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2명의 정탐꾼을 파견한다. 우리가 실패한 그 지점, 그 사명은 실패를 이유로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기회를 부여받고 재시도를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것,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살면서 쓰라리게 후회되는 것들은 내가 그 때 그 시점에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들이다. 순발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어버버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거나 내 생각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면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그냥 사태에 순응해 버리는 것이다. 형제 중에서도 존재감이 없어서 그냥 심부름이나 하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존재로 성장해서 내성적이란 딱지가 붙은 내가 스스로 뭔가를 도모하거나 타인과 분쟁을 일으키고 언쟁을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일은 누군가가 해결하였고, 나는 그저 구경꾼으로 풍랑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달라진 건 교인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선과 악의 개념이 분명해지고 내 행동에 대한 명분이 생기니 좋게 말하면 담대해진 것이다. 내가 받은 확신이나 이상을 무시받을 때는 참지 못하고 순수한 분노 즉 의분이라는 것도 폭발했다. 그러나 세월 속에 나는 작아져 있었다. 번번이 내 목소리가 들려야 할 지점에서 침묵했다. 그런 나의 소심함이 나를 모든 책임에서 면제해 주지는 않았다. 반드시 거쳐야 할 그 길, 내가 죽어도 하기 싫고 피하고 싶고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그 어떤 관계에서 두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맞닥뜨리게 된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축복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을 수행하도록 계획하셨을까? 그냥 이적과 기사로 그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을 평탄하게 꽃길로 인도하실 수는 없으셨을까? 이런 의문들과 더불어 그 표상들을 자세히 공부하니 이해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작은 여호수아로서 각자의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전사에게 필요한 칼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무딘 칼로서는 이기기가 어려우니 늘 말씀을 읽어서 칼을 예리하게 갈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이기는 자는 상급을 얻으리라고. 모든 자가 아니라 이기는 자들이다. 이긴다는 것은 싸움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싸움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 불의와의 싸움, 악한 영들과의 싸움, 이런 싸움을 나는 지금 하고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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