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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남가주 기도회에 다녀와서

최종 수정일: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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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9월 27일부터 28일까지 24시간 동안 진행된 제 7회 남가주 기도회에 다녀왔다. 기도회 강사는  Lombard  Church에서 시무하시는 권빛 목사님이었다. 영어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목사님은 한국어 설교에 자신없다 하셨는데, 어느 한국어권 목사님 못지않게 유창한 한국어로 성경과 예언의 신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감정에 호소하여 울게하지 않고, 이성이 먼저 깨닫고나서 가슴이 울먹이게 하는 설교였다. 남가주 기도회는 어쩌면 그렇게 젊고 영성 깊은 목사님들을 선별해서 모셔오는지 매번 남가주 기도회에 참가할 때마다 놀랍기만 하다. 기도회 임원들이 겸비한 마음으로 40일 기도를 하면서 이 집회를 준비한다는 말을 나중에 듣고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오프닝 강의에서 예수님께서는 온 우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구하러 오신다는 십자가의 도의 원리를 접하고 초장부터 무너졌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온 우주와 맞먹는다는 말씀이 어쩌면 이토록 절절하게 닿아올 수 있는 걸까?


여덟 번의 주옥같은 말씀이 심연을 휘저어 수면 위로 떠오른 파리한 영혼 위에 따뜻한 빛을 비추어 주었다. 십자가의 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진정한 쉼과 안식일의 의미 등, 한가지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메세지였지만 이번 집회에서 특히 시편을 새롭게 만나서 기뻤다. 시편 23편과 시편 109편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을 배워서 감사하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후략)  


지팡이와 막대기의 의미를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여태 나의 목자 예수님이 지팡이로는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안전하게 인도하고, 막대기로는 곁길로 빠진 나를 견책하는 사랑의 매로 사용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히브리 원어에 몽둥이라고 표현된 막대기는 양을 넘보는 사자를 비롯하여 위험한 야생동물들을 퇴치하는 기구였다고 한다.


사무엘 상 17장 34절에는 골리앗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다고 말리는 사울에게 다윗이 응답하는 장면이 있다.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다윗은 양떼 곁에서 한가롭게 수금이나 타던 유약한 소년이 아니라 사자의 입에서 양을 건져내고 몽둥이로 사자를 쳐 죽일 만큼 용맹했다.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선한 목자였다. 예수님이 나 한 사람만을 위하여 죽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내용이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워서 기뻤다. 기도할 때 경건한 척, 거룩한 척 하는 기도, 즉 가식적이고 외식적인 기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기도했다. 제가 부족해서 오늘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그에게 평강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그 귀한 영혼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이 못되고 가련한 사람을 용서해주십시오, 라며 자책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다윗처럼 기도하는 것이다. 시편 109편은 표독한 다윗의 기도가 점입가경으로 시원하게 풀려있다. 나는 앞으로 다윗처럼 기도하기로 했다.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그에게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내가 다윗처럼 기도하겠다 망언했는데, 언감생심이다. 그렇게 지독한 기도를 드릴만큼 미운 원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작은 불평 하나라도 원수와 맞먹는 질량을 지녔다고 볼때 경중의 차이가 없다. 기도의 기본 개념은 give and take다. 기도의 원리는 이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할 것. 진실할 것. 그렇게 마음을 토로하고 난 후에는 잠잠히 침묵하며 엎드릴 것.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을 주신다. 위로와 평안과 깨달음을 주신다. 이것이 기도의 완성이다. 나는 여지껏 기도를 거꾸로 해왔다. 형제자매에게는 쓰레기 같은 내 감정을 퍼붓고, 하나님께는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는 나의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을 쏟아 털어놓고, 형제자매에게는 친절했어야 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Be Angry, Do not Sin! 기도할 때 하나님을 감정의 해우소로 삼아 원통하고 억울한 심정을 맘껏 풀어놓되 형제자매에게는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다. 시편에서는 감정을 쏟아낸 후 잠잠하라는 말씀이 많이 있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라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시 4:4)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시 62:1)  


이 말씀에 순종할 때 진정한 회개가 터져나온다. 마침내 찬송과 감사가  흘러나온다. 원수를 죽어라고 신나게 욕하고 저주하면서 하나님께 일러바치다가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라고 고백하는 이유다. 무릎 꿇고 엎드려 잠잠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마침내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원수를 향한 저주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사이에는 시간 간격이 반드시 있다. 나는 예전에 시편을 읽으면서도 이걸 알지 못했다. 이제는 이렇게 기도하려고 한다. 토로와 침묵. 탄원와 묵상.  


우리 각자에게는 사연이 있다. 내 생각만 전하려고 조급해 하지 말고 상대방의 말을 정성으로 듣다보면, 그의 사연이 보이고 그의 언행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억지 이해, 억지 사랑은 불가능하다. 전심으로 상대방의 사연을 귀 기울여 들어줄 때 그의 의도가 보이고 진심을 알 수 있다. 물 속에 있는 돌멩이는 태양 아래에 있는 돌멩이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른다. 아이티 속담이다.


남가주 기도회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재정적으로 혹은 여러 문제로 운영이 힘들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발전해서 메마른 남가주의 영혼에 촉촉한 성령의 단비를 흡족하게 맛보게 하는 기관이 되기를 기원한다.


 
 
 

댓글 1개


종려
종려
10월 19일

잘 다녀 오시고 감상문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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